포기 하기 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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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더 화이팅 신장판 1권과 2권에 있는 작가의 에피소드를 정리한 내용이다.
작가는 일본에서 더 화이팅 이라는 만화로 1억부 클럽의 반열에 들었다. 더 화이팅은 1989년 연재를 시작해 아직도 연재중이고 단행본 기준으로 130권을 넘게 발매된 만화다. 그러나 그도 더 화이팅을 연재하기까지 계속되는 실패와 커리어에 대한 고뇌가 있었는데, 이 만화를 연재하기 까지 에피소드를 아래 가져와봤다.

이 책을 손에 드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카모가와 일기라는 제목으로 책 마지막에 후기를 쓰려고 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더 화이팅을 오랫동안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연재 중이긴 하지만 첫 번째 일기에서는 연재 전의 일들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당시 저는 23살이였습니다. 세상의 시선으론 아직 어린 나이죠. 하지만 이 시점에 저는 이미 월간 연재 한 편, 주간 연재 두 편, 총 세 편의 연재 종료를 경험했습니다. 고생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았고, 그래서 몇 번이고 기회를 얻었던 것입니다. 저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결과도 내지 못했고 매번 실패만 했습니다. 좀 더 훈련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때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기대해준 주변 분들에게 죄송하여 반성만 했습니다. 어린 저도 연재 3연속 종료의 의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담당 편집자로부터 ‘아마 다음이 마지막일 것이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치바 테츠야 선생님의 광팬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왔기에 아무 망설임 없이 만화가를 지망했습니다. 치바 선생님이 계신 소년 매거진 연재를 목표로 한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였습니다. ‘저 사람과 같은 지면에 연재하고 싶다.’ 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도달했을 때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저 자신과 ‘다음이 마지막’ 이라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그 마지막도 약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회의에 콘티를 내고 뽑혀야만 했습니다. 당시의 담당자는 정말 끈기 있는 사람이어서, 저를 격려해 주며 늦은 밤까지, 때로는 아침까지 콘티 수정을 계속 기다려주었습니다. 생각난 것을 즉시 말하는 분이어서, ‘책임도 못 질 거면서 귀찮게’ 라고 생각한 것도 많았습니다. 콘티 작업이 미로에 빠졌을때, ‘조지 씨, 복싱 만화 그려보지 않을래요?’ 하고 제안도 했죠. 제가 복싱을 무지 좋아한다는 걸 알고 한 말이었지만 저는 거부했습니다. 주간 소년 매거진에는 치바 선생님의 ‘내일의 죠’라는 위대한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 지면에 저 같은 게 도전하는 건 너무 무모하다, 복싱만화에는 절대 손을 대면 안 된다. 그렇게 설명했지만. ‘이게 마지막이니까 어차피 질 거라면 제일 좋아하는 장르로 도전해보자.’ 고 우겼던 것입니다. 진다는 전제도 신경이 쓰여서 바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의 일은 또렷이 기억합니다. 제안을 받고 돌아온 제 머릿속에는 ‘이게 마지막’, ‘제일 좋아하는 장르로 도전’, ‘마지막…’, ‘도전…’ 두 단어가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손을 움직여 복서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그 그림과 함게 복싱만화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전했습니다. 저는 거기에 조건을 달았습니다. ”내일의 죠’는 벽이 있어서 그리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의식하게 될 거다.’, ‘복싱이라 해도 색다르게 접근하고 싶다.’, ‘고등학교 복싱부, 아마추어 복싱을 소재로 하고 싶다.’ 라고 말이죠. 하룻밤 생각하고 온 제게는 사실 승산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코바야시 마코토 선생이 그렸던 ‘유도부 이야기’ 라는 빅히트작이 있었는데, 그걸… 고스란히 가져오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생각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 당시의 저는 인기를 얻어본 적이 없어서 당연히 뭐가 인기를 끌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베끼는 게 뭐가 나빠? 어짜피 흉내 내더라도 솜씨가 없으니 비슷하지도 않을 텐데. 애당초 모든 건 흉내내는 것에서 시작되잖아.’, ‘베끼는게 아니야. 존경이라고 말해줘.’ 하며 매일같이 스스로를 합리화 했습니다. 배끼기는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뭐가 좋을지 전혀 몰라서 저는 천재들에게 의존했습니다. 못난 제가 손쉽게 레벨 업 하기 위해 선택한 게 배끼기, 흉내내기, 카피였습니다.

-중략-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만 콘티 작업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습이다. 그리고 제 자신이 쉬운 길로 도피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또 다시 듣게된 ‘도전’ 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훔치는 것도 예술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그 시절, 저는 즐겁게 콘티를 짰습니다. 콘티 짜는 기간은 돈이 되지 않아서 생활하기에 다소 곤란한 적도 있었지만 ‘즐거웠다’고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도 제 콘티가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담당 편집자도 흔쾌히 ‘이걸로 가자’며 회의 때 제출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 제출해도 연재 허가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이렇게 말했다’, ‘이런 주문이 있었다’ 며 다시 가져온 콘티를 들은 대로, 주문대로 고치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제출했다가 되돌아오는 것의 반복이었습니다. 콘티 작업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피폐했습니다. 미팅 분위기도 나빠졌습니다.

어느 날 담당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 것이 더 재미있었는데…”

젊었던 저는 지체 없이 반응했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고쳤잖아! 그쪽은 불평만 늘어놓아도 월급이 나오겠지만 나는 계속 공짜로 일하는 거라고. 그런 무책임한 소릴 하다니, 내 시간 돌려내!”

진지하게 때려눕힐까도 생각했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그날은 책상만 걷어차고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서 콘티를 고쳤습니다.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들 알아주지 않는 걸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인정받지 못한 콘티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건 불가능 했습니다. 때로는 처음부터 전부, 때로는 주문받은 부분만, 하지만 근본은 다르지 않은 콘티를 제출하는 날들이 매주 계속됐습니다. 회의 날, 결과를 빨리 듣고 싶어서 편집부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편집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통로를 사이에 둔 흐릿한 유리벽 너머에 있는 나를 그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방금 본 콘티에 대한 감상을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몰래 듣던 나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모리카와 조지라는 이름이 있기만 해도 보지 않아.”

“이름만 봐도 기대가 안 돼.”

경악했습니다. ‘보지도 않은건가? 그럼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잖아!’ 뛰쳐나가 전부 두들겨 팰까 생각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습니다.

이게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는데, 진즉에 끝났던 건가…, 하고 좌절했습니다. 그날은 로커만 걷어차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콘티를 고쳤습니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 순조롭게 진행될 리 없었지만 만화 그리는 게 정말로 좋았습니다. 콘티만 쓰고 만화를 그리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담당은 여전히 끈질기게 수정을 요구했고, -중략- 점점 지금의 일보에 가까워졌고. 그의 복싱부 생활도 활기를 띠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회의에서는 부정적인 의견만 돌아왔습니다. ‘왜? 어째서?’ 제대로 봐주지도 않으면서. 인내심 대결에서도 지쳐갈 무렵, 편집부에서 당시 편집장을 만났습니다. 약간 자포자기가 되어있던 저는 버릇없는 말추로 말을 건냈습니다.

“확실하게 말해주세요.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겁니까?”

냉철한 눈으로 편집장이 말했습니다

“프로복서로 바꿔주세요. 그리고 나서 생각해봅시다.”

그러니까 그건, 치바 선생님이…, ‘내일의 죠’가…

“치바 선생님을 존경하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기려고도 하지 않고 도망만 치다가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만화를 연재할 수는 없잖아요.”

프로로 바꾸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지 않는가. 그럼 처음부터 말해주지! 내 시간 돌려줘! 하며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다음 말로 얻어터진 것은 나였습니다.

“치바 선생님과 ‘내일의 죠’에 도전해보세요.”

하고 이어서 말했던 것 입니다. 생각해보면 끈질기게 콘티를 계속 제출하는 인기 없는 작가를 내쫓기 위한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젊음은 솔직한 것이기도 합니다. ‘도전’이라는 말을 가지고 돌아와 콘티를 고치면서 돌이켜보았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아무리 잘 훔쳐 만들어도 서점에 같이 놓이면 진짜를 사는 법이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그렸던 건 전부 타인에게서 빌려온 것이었어.’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치바 선생님의 만화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보았습니다. 보면서 물어보았습니다.

“치바 선생님…, 재미있는 만화라는 건 뭔가요?”

그 순간, 일보가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강하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인가요?”

약 1년 반. 매주 빠지지 않고 회의에 제출했고. 그날도 반쯤 포기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던 차에 담당이 두 팔로 크게 원을 그렸고 터무니없을 만큼 황급히 여행을 떠나버렸습니다. 별 얘기도 없이 여행을 떠났으므로 그 의미를 가르쳐달라며 때려서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아마, 어쩌면, 틀림없이 이제부터 도전이 시작되는 것이 분명하다며 주먹만 꽉 쥐었던 걸 기억합니다.

이렇게 더 화이팅은 그 첫발을 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고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채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출판하게 된 문고판, 1권부터 보면 다소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부디 일보와 그 친구들을 계속 지켜봐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모리카와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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